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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영 "'극한직업' 아내→'엑시트' 누나…연기 인생 2막"(인터뷰)
등록일 2019-09-10 오후 2:01:47 조회수 22
E-mail sehwan0225@hanmail.net  작성자 관리자

[N딥:풀이]①
"30대 지나니 주인공보다는 살아있는 인물 하고파"

출처 :(서울=뉴스1) 정유진 기자| 2019-09-10 11:30 송고 | 2019-09-10 11:54 최종수정

배우 김지영 / 뉴스1 © News1 유승관 기자

올해 1600만명을 동원한 영화 '극한직업'(이병헌 감독)과 900만을 넘기고 흥행에 성공한 '엑시트'(이상근 감독)에는 숨은 공로자가 한 사람 있다. 바가지를 긁지만, 누구보다 남편의 편이 돼주는 아내이자 백수 동생에 발차기를 할 지언정 용돈은 잊지않는 큰누나였던 배우 김지영(45)이다.

최근 인터뷰 장소로 들어선 김지영은 밝고 사랑스러웠다.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 '실물이 가장 예쁜 연예인'이라고 꼽힐 만큼 은은하고 우아한 미모도 돋보였다. 인터뷰를 위해 모인 모든 이들에게 상냥하게 인사를 건네는 모습은 '극한직업' 속 고반장의 아내나 '엑시트' 속 용남이 누나처럼 친근하고 씩씩했다.

1995년 단막극으로 데뷔한 김지영은 1996년 MBC 장수 드라마였던 '전원일기'(1980.10.21~2002.12.29)의 복길이 역으로 캐스팅된 후 2002년 드라마가 끝날 때까지 무려 7년 넘게 같은 역할을 했다. 그로 인해 30대 이상 세대들에 김지영은 이름보다는 '복길이'라는 배역명으로 더 익숙했다. 이후에도 다양한 드라마와 영화에서 여러 여성들의 얼굴을 보여줬던 김지영은 그야말로 '다작 배우'다. 스스로 대표작으로 꼽는 작품은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임순례 감독)과 '터치'(민병훈 감독).

김지영은 올해를 "가을날 굉장히 풍성했던 어떤 한때"로 기억할 것 같다고 했다. 대중적으로 흥행하는 영화를 두 편이나 찍었고, 의미있는 예술 영화도 찍었다. 구름처럼 둥둥 흘러가는 시간을 손을 뻗어 붙잡고 싶을만큼 좋았다. 독립영화를 챙겨보고, 배역을 맡으면 샘솟는 아이디어로 다양한 준비를 해간다는 이 열정적인 배우와의 인터뷰를 정리했다. 

배우 김지영 / 뉴스1 © News1 유승관 기자

-영화를 재밌게 봤다. '극한직업'과 '엑시트'까지 올해 출연작 2편에서 연이어 '하드 캐리'를 했다.

▶ 운이 좋았다. 좋은 역할을 많이 맡았다.

-좋은 반응을 많이 얻었는데 소감은 어떤가.

▶영화가 잘 되는 게 너무 행복하다. 그렇지만 딱히 다를 건 없다.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이든 쭉 자기 일을 하다보면 어떨 땐 잘 될 때도 있고 안 될 때도 있다. 그 중에서 지금은 잘 되는 때다. 나에게 다른 점은 없다. 늘 해왔던 것처럼 연기한다. 작품이 잘 되면 마음이 좋고 안 되면 속상하지만 두 경우 다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극한직업'으로는 '천만 배우'도 됐다.

▶(웃음) 애매한 게 내가 '극한직업'은 특별출연이었다. 너무 잘 됐는데 카메오라고 하기에는 많이 나오는 느낌인가 보다. 정작 서너 신밖에 안 되는데 그래도 그런 느낌이라 아무래도 많이 기억해주신다. 사실상 특별출연이라서 잘 모르겠다. 그냥 좋다. 작품이 잘 되면 무조건 너무 행복하다. 성공하거나 돈을 많이 벌거나 그래서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그저 내가 참여한 작품이 잘됐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거다.

-둘 다 대중적으로 성공한 작품이다. 어떻게 이렇게 잘된 작품을 골랐을까, 작품 선택의 기준도 궁금하다.

▶특별히 '이 작품은 잘될 것이다' 이런 건 없었다. 그냥 스스로 재밌다는 생각이 들 때, 어떤 장르이든 굉장히 재밌다는 생각이 들 때 한다. 이 작품과 장르 안에서 내가 맡은 역할을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거나 잘 해내지 못하도 도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다. 재밌을 것 같다는 호기심이 발동하면 역할의 분량이나 경중을 떠나서 작품에 참여하는 것이 즐겁다. 그렇게 되면 선택을 하는 것 같다.

-'극한직업' '엑시트' 두 작품 모두 그랬나.

▶그랬다. 카메오든 조연이든 주연이든 어떤 것이든 이 작품은 이런 그림이 그려진다. 재밌을 것 같다, 하면 선택을 했던 것 같다.

'극한직업' 스틸 컷 © 뉴스1

-두 작품 속 캐릭터 모두 지극히 현실적인 캐릭터였다. 재밌으면서도 공감이 갔다. 연기하면서는 어땠나.


▶작품마다 색깔도 다르고 감독님 성향도 다르지만 (현실적인 캐릭터가 등장하는 것이)요즘 성향인 것 같다. 예전에도 그런 연기를 했는데 요즘 유독 많은 분들이 좋아하시는 건  조금 더 영화나 드라마를 가까이 두고 편하게 느끼고자 하는 대중의 심리가 잘 맞아떨어졌다고 해야 할까. 이전 역할들보다 특별히 더 자연스럽게 하려고 한 것은 없지만 요즘에 더 좋아해주시는 것 같다. 내가 더 재밌었다, 공감이 되니까. 많은 분들이 어떤 연기자를 좋아할 때 보면, 무엇을 애써 많이 만드는 것보다는 배우 스스로가 '굉장히 재밌었어, 굉장히 흥미진진했어'라고 느끼면 보는 분들도 재밌게 봐주시는 것 같더라.

-찍으면서도 재밌었을 것 같다. 혹시 '극한직업'이나 '엑시트'에서 기억나는 애드리브 장면이 있나.

▶애드리브는 순간순간 있었던 것 같은데 딱히 나누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극한직업'은 2년, '엑시트'는 1년 전이다. 그래서 정확히 기억은 안 나는데 현장에 들어가면 나도 다른 배우가 찍는 걸 보고 디렉션을 듣고 한다. 상대 배우와 같이 들어가면 그 역할로 분하면서 호흡 안에서 애드리브도 나오고 하는 것 같다. '극한직업' 할 때는 부엌에서 하는 작업이 스릴 있었다. 칼질을 너무해서 감독한테 칭찬 받았다.(웃음) 칭찬을 많이 안하시는 분인데.

-카메오는 촬영할 때 다른 점이 있는건가.

▶카메오라는 게, 특별출연이 힘든 게 다른 배우들은 그 안에 계속 있는데 특별출연은 그게 아니라 굉장히 민망하기도 하다. 현장에 들어가면 자연스럽게 해야하니까 위축이 된다. 어떻게 하면 그 작품에 나를 녹일 수 있을까가 중요한 것 같은데 '극한직업'은 분위기도 좋았고 많은 분들이 편안하게 해주셔서 그래서 잘 뽑아낼 수 있었던 것 같다. 나온 건 얼마 안되지만 (극중) 엄청 썰어대서 파뿌리가 날아가고 난리였다. 영화상에서는 집중이 될 만한 것만 편집 됐다. 실제로는 난타처럼 난도질을 해가면서 더 많이 했다. 그 뒤에 거의 작두를 타는 장면이 있는데 이러면 호러로 갈 수 있겠다고 싶었나 보다.(웃음) 내가 이만큼 해 놓으면 다들 알아서 작품을 만들어주신다.

'엑시트' 스틸 컷 © 뉴스1

-'엑시트'에서는 특별출연이 아닌 누나 역할로 비중이 더 컸다. '극한직업'과 달랐을 것 같다.


▶'엑시트'는 아무래도 조정식씨와 같이 남매 케미스트리를 연기했던 장면이 가장 재밌고 편했다. 내 남동생이 어릴 때 해왔던(김지영의 남동생은 배우 김태한이다)거라 완전 몰입했다. 제일 몰입이 잘 됐다. 날아차기를 해서 머리를 강타하는 장면이 있었고, 뒤에서 조정석씨가 설거지를 하는데 발차기를 해서 머리 치는 장면도 있었는데, 그건 편집이 됐다. 두 번 다 그러면 너무 세니까 편집을 하신거다. 그런데 그때 내가 너무 세게 때렸다. 수많은 구타 속에서 꿋꿋하게 연기한 조정석씨에게 박수를 드리고 싶다. 조정석씨 팬 분들이 얼마나 마음 아팠겠는가. 하지만 조정석과 호흡은 너무 척척 잘 맞았다.(웃음)

-조정석과는 원래 친했나.

▶친분은 있었다. 영화 시사회나 뒤풀이 이런 데서 만나 '너무 잘 봤어요' '선배님' 이 정도였지 말을 놓는 사이는 아니었는데 작품에서 만나면서부터 친해졌다. 조정석씨의 연기가 너무 좋다. 닮고 싶은 후배다. 늘 재밌고 배우로서도 인간적으로서도 너무 좋아하는 후배다. 그래서 꼭 같이 연기해보고 싶었다. 내가 10년만 젊었어도…(웃음) (멜로를 원하나?) 소망한다, 간절히.(웃음) 이번 찍고 있는 드라마가 살을 찌우고 몸을 불려야 하는 드라마라서 살을 빼고 조정석씨한테 (상대역) 프러포즈를 해보려고 한다.(웃음) 재밌을 것 같다. 너무 상대 여배우로 하기 그러면 역할을 만들어 봐도 좋고, 꼭 러브라인만 있어야 하는 건 아니다.

-조정석과는 처음 작품을 찍은 거였는데, 찍어보니 어떻던가.

▶역시 조정석이다. 왜냐하면 내가 너무 좋아하는 친구고, 연기적인 측면에서 배우고 싶은 것도 많다. 같이 호흡을 나눠보니까 그 친구만의 독특한 면이 있더라. 극을 전체적으로 끌고가면서 끝없이 아이디어를 내는, 지치지 않는 에너지가 있더라. 그게 너무 좋다. 같이 연기를 할 때 상대 배우도 그 에너지를 받는 것 같다. 다 좋았다. 가족들도 누구 하나 버릴 것 없이 다 좋았고 어머니 아버지부터 시작해서 모든 가족들이 다 그랬다. 편안하게 가족으로 융화가 되더라. 지금도 '단톡방'에서 계속 대화를 나눈다. 누구는 어디서 뭘 한다더라. 누구는 영화를 찍고 있다고 하면서. '오늘 '엑시트'가 몇백만을 넘었어요' '가자' 이러면서 캡처해서 올리기도 하고. 서로 일상 공유하고 있다.

-우정 출연이나 특별 출연을 포함해 1년에 영화를 1편에서 2편은 꼭 하는 것 같다. 필모그래피에서 영화에 대한 남다른 애정이 느껴지더라. 

▶배우 중 영화에 대한 애정이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어릴 때는 여러 가지 역할을 소화했다. 신인 때는 단역부터 안 해본 게 없다. 공연도 하고, 영화도 찍고, 드라마도 하고 이렇게 밟아가는데 언젠가는 나도 주인공을 할 수 있었으면 했고, 그게 꿈이었다. 그렇게 다작을 했던 20대를 지나 30대에 주인공도 하고 그러면서 해보니까 사실 내가 원했던 것은 딱히 주인공만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공이라기보다 작품 안에서 살아있는 인물을 하고 싶은 거였다. 작품의 색깔에 맞는. 이게 내 소망이었단 생각이 들더라. 40대가 되면서부터는 혹은 그 이전인 30대 중반부터 주인공이 아니더라도 카메오도 좋고 단역도 좋고 그냥 내가 재밌다고 느끼는 역할이면 됐다. 심지어 예전에는 한국영화아카데미 졸업 작품을 접하게 됐는데 그게 너무 하고 싶어서 감독님한테 연락한 적이 있다. 그 감독님은 학생이니까 오히려 너무 부담스러워서 '갑자기 왜?' 하면서 부담스러워했다. '이거 그냥 학생 졸업작품이에요' 했는데 내가 오디션을 보게 해달라고 해서 찍은 적이 있다. '춤이 시작됩니다'라는 작품이다. 내가 너무 좋아하는 모지은 감독님이다. 예술적으로도 그렇고, 작품을 활발하게 많이 하셨으면 좋겠다. 

-독립·예술 영화에 대한 관심이 높은 것 같다. 최근에는 '프랑스 여자'도 찍었다. 

▶사실 '엑시트' 찍을 때 '프랑스 여자'를 같이 찍었다. '프랑스 여자'도 예술 영화로 잘 가고 있다. 김희정 감독님이 유럽파 감독님인데 폴란드에서 유학하고 오셨다. 우쯔영화학교 출신이다. 그곳을 졸업한 분은 우리나라에 두 세분 밖에 없을거다. 거기 나온 감독님의 독특한 색깔이 있더라. 유럽 영화하신 분들의 색깔이 있다. 김 감독님이 처음 한국에 들어와서 한 10년은 넘을 것 같다. '열세살, 수아'라는 작품을 하는데 처음으로 그 작품의 역할에 대해 제안을 해주셨다. 그런데 그때 아쉽게도 내가 작품이 엮여 있어서 너무 민폐일 것 같은 거다. 너무 많은 작품을 찍으면 찍어대기만 바쁠 수 있어서 고사를 했었다. 그 이후 어떤 영화제였나 영화인들 모임에서인가 한번 만났다. '감독님 그 때 그거 못 해서 너무 아쉽다' 했었다. 밤새도록, 아침이 올 때까지 얘기를 하고, 감독님한테 어드바이스도 받고 이랬다. 그 이후에 감독님이랑 1년에 한두 번 연락을 하다가 작년에 그분이 작품을 하는데 '지영씨가 같이 할 수 있을까?' 하시더라. '아 그럼요!' 했다. 

배우 김지영 / 뉴스1 © News1 유승관 기자
-영화 '7호실'(2017, 이용승 감독)에서 김지영을 본 기억도 난다. 그때 무척 인상깊은 캐릭터를 보여줬다. 

▶남동생(배우 김태한)과 카메오를 한건데 그게 너무 재밌었다. 원래는 그 비디오방을 보러 온 복덕방 아저씨와 주변 상가에서 음식점을 하는 나이 많은 부부 설정이었는데 '어차피 특별출연이니까 설정 바꿔주시면 안 돼요?’ 해서 동생과 찍었어요. (설정은) 타투 가게를 하는 남매인데 가로수길에서 약간 독특한 음악 좋아하고 '악마주의' 느낌도 나고, 패션피플이라고 불리지만 약간 이상한 사람들로 하면 재밌지 않을가 했다. 새벽 2시에 일어나서 온몸에 타투를 그렸다. 재료를 이만큼 사서 동생한테도 해줬는데 동생이 ‘아 이런거 하지마’ 하면서도 하자고 끌어들였는데 '이상해' 하면서도 좋아하더라. 그 까만 털복숭이 의상도 내 거다. 

-평소에서 이렇게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고 준비하는 편인가.
▶혼자 꽁냥꽁냥 하며 준비해가는 걸 좋아한다. 그런데 준비해간다고 다 받아들여지는 건 아니다. 맞으면 좋고, 감독님이 ‘우리 작품엔 좀 그런데?’ 하면 못 한다. 감독님의 색깔대로 준비는 5만8000개를 해간다.(웃음) 

-조금 완벽주의자 같은 성격일 것 같다. 혹 연기할 때만이라도 그런 기질을 발휘할 것 같다.
▶어릴 때는 '덜덜'거렸다. 책가방 준비도 다 해놓고. 어느 순간에는 이런다고 잘 되진 않아, 하는 생각이 들었다. 준비를 많이 하고 현장가서 즐기자 하는 마인드다. 준비를 많이 하면 덜 떠니까. 내가 너무 소심하니까 할 수 밖에 없다. 

-소심함은 전혀 안 느껴진다. 오히려 '엑시트' 속 용남이 누나 같은 성격일 줄 알았다. 
▶나이가 들어 그래 보이나 보다.(웃음) '엑시트' 속과 비슷한 모습도 있다. 어쨌든 내 안의 모습을 꺼내서 더하기도 하고 그런거니까. 그런 모습들을 꺼낼 때 되게 창피하고 망설여지고 그렇다.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 거기에 옷을 조금 더 입히면서 '나지만 나는 아냐' 하면서 한다. 그래도 작품 안에 살아있는 누군가이니까. 나랑 비슷한 내 친구? 우리 언니? 그런 사람이야, 라고 객관적으로 보면서 연기를 하려고 한다.
  
배우 김지영 / 뉴스1 © News1 유승관 기자
-데뷔 25년차 배우인데도 아직 긴장하나.

▶항상 그렇다. 사람들이 나에게 '네가 떤다고?' 물으며 놀란다. 우리 남편도 너무 신기해 한다. 오빠(남성진)는 태생이 연기자 집안에서 태어나서 놀이처럼 연기를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나는 너무 소심하다. 어렸을 땐 누가 말을 걸면 얼굴이 빨개지고 했다. 그래서 술을 배운 것도 있다. 대인관계가 좀 편해지면 좋지 않을까 해서 술을 배웠다.

-그렇게 술을 배우면서까지 떨쳐버리려고 했는데,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조금 편안해진 것인가. 

▶방법을 찾았다. 그래도 떨지만 이런 상황에는 이러면 최대한 집중할 수 있다, 하는 방법을 찾아가고 있다. 옛날에는 뭔가를 할 때 욕심이 앞섰던 것 같다. 준비를 했는데 잘할 수 없고, 더 잘하고 싶은데. 그래서 내가 준비한 게 가려져서 더 못한다. 긴장되고 경직되고. 오히려 내 자신에게 독해졌다. 객관적으로 보기 시작했다. '너는 더 잘할 순 없어. 준비해온 걸 네가 더 잘하려면 네가 준비한 것만 해.' 이렇게 나에게 질책을 하기 시작했다. 10개를 준비해온 것 중에 7~8개가 나오면 생큐고 2~3이 나오면 다시 한 번 해주실 수 있나 부탁을 하든지 한다. '2~3밖에 안 나오면 준비를 덜 한 거다. 여기 왔을 땐 어쩔 수 없어, 끝났어.' 그렇게 다짐하고 들어가는 것 같다. 잘 안 되면 내 탓이다. 내려놓았다. 훨씬 편하다. 

-항상 좋은 평가를 받지 않나.

▶그냥 많이 해서 그렇다. 많이 하면 1~2개 걸린다. 어릴 때부터 그랬던 것 같다. 다른 건 욕심 별로 없는데. 여자들은 예쁜 핸드백도 좋아하는데 그렇지도 않고. 돈도 많이 벌고 싶어한다. 그런데 나는 딱히 생각 없다. 집도 '전세? 괜찮아' 하는 이런 스타일인데. 연기할 땐 되게 욕심이 많아진다. 그래서 신인 때도 그렇게 엄청 (열심히)했던 것 같다. 단편, 단막극을 너무 많이 했다. 아마 웬만한 선생님들보단 많이 했을 거다. 100편 넘을 걸? 

-연기에 대한 욕심을 놓지 않는 것인가.

▶욕심만으로는 이제는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엔 좀 불안하다. 그러니까 내 연기 인생의 2막이랄까, 2분기쯤이라고 할까? 연기 인생이 4분기 정도가 있다면 2분기 정도라 할 수 있겠다. 약간 큰 변화가 왔다. 마흔 정도 되면서 느끼는 것 같다. 이전에 같이 작업했던 감독님, 작가님, 스태프들이 물론 지금도 다 건재하시지만 뭔가 새로운 세대가 훅 올라왔다. 세대가 공존하면서 내 위치가 바뀌었다. 나는 항상 '아, 네! 이렇게 하면 될까요?' 하면서 의지도 하고 그랬는데 이제는 '선배님 이제 이렇게 해주시면 되겠습니다' 하고 의뢰를 받는 입장이다. 그래서 당혹스럽다. 감독님이 후배시고 어리시면 나에게 ‘하시고 싶은대로…' 하신다. '아니 감독님이 원하시는 걸 말해주시면 할게요' 하는데도. 내가 어떻게 대처 하는 게 맞는지 생각한다. 10대부터 30대 후배가 다 있다. 나는 그럼 40대 연기자로서 어떤 자리매김을 해야하고 선후배사이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하고, 이 시점에 나는 어떻게 분해야 많은 것들을 배우고 아우를 수 있는 배우로 성장할 수 있을까 싶다. 무섭기도 하고 신인 때처럼 떨리기도 한다. 

-세대 교체를 실감하는가 보다. 

▶감독님들 중에서는 선배님이라고 하는 분들 많지 않았다. 보통 '지영아' 이랬는데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런데 얼마 전부터 '선배님' 이러시더라. 나름 자기의 구역이 있으니 알아서 하는데 너무 신경써주시니까…'아 그럼 내가 책임을 뭔가 더 져야 하는 위치인가?' 싶더라. 어린 감독님들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내가 마냥 기댈 수만은 없겠구나. 그분들은 '전원일기'나 나의 20대 30대는 잘 모를 거 아닌가. 나는 그들에게 뭘 줄 수 있고 뭘 나눌 수 있을가 이런 것들이 고민으로 다가오면서 하나하나 새롭게 시작해 나가는 단계. 모든 게 새롭다. 제가 그렇게 받아들여져서 그런지 되게 긴장된다. 

-오히려 기대되는 면도 있을 수 있겠다. 

▶기대되는 면도 있다. 이 감독은 스타일이 이렇고 색깔이 이래. 그래서 그렇게 막 해왔다면, 요즘엔 '어떤 색깔일까?' 되게 궁금하다. 화법도 다르고 디렉션도 다르다. 나는 후배들과도 잘 어울리는데 작업할 때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다.  시대가 점점 빨리 바뀌고 있단 생각이 들고 '아 나도 나이는 먹는구나' 싶다. 우리 아들이 이제 막 12살인데, 얘기하다가 비속어 섞인 말을 쓴다. 바로 혼내진 않고 끝까지 들어본다. '그런 말을 쓰는구나?? 그런 말을 네가 썼을 때 네 인격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 상대방은 어떻게 생각할 것 같아?' 하고 화두를 던진다. '그런 말을 어디서!'라고 하지는 않는다. 같이 만화방에 가서 뒹굴거리기도 한다. 그런데도 너무 어렵다. (세대의 변화를) 다 소화하고 싶은 욕심이 있지만 다 소화할 순 없을 것이다. 내가 갖고 있는 시대의 색깔이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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